하늘 구름이 그리워진 오늘.

오늘은 하루종일 흐리멍텅한 날씨에 오전에는 비까지 세게 왔다 그치기를 반복.

며칠 전에 찍어 둔 하늘 사진이 문득 떠오른다.

물론 흐리멍텅한 날씨에 한 번씩 비도 와줘야 하지만, 이럴 때 꺼내보려고 찍어놓았던 사진들이 아니었던가.

하늘 구름

마치 흰색 물감을 큰 붓에 물과 함께 찍었다가 하늘색 도화지에 촤~악 하고 뿌려본 작품이라고나 할까..ㅎㅎ

이건 왠지 양털 구름

양털 구름 같기도 하고, 빗질 하지 않은 호두(푸들 반려견)의 꼬인 털 같기도 하다. ㅎㅎ

이걸 구름이라고 해야 하나

구름이라고 해야 하는건가... 왠지 새파란 하늘의 밋밋함이 싫었던지 생기다만 구름이라고 해야하나...

건물부터 시작한 하늘과 구름

색상의 진함의 정도를 측정하는 내용같이 하늘색의 연함과 진함의 차이를 한 장의 사진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다.

건물에서부터 시작하는 색과 하늘 저 위의 색의 진함의 차이도 하나의 볼거리.

어머니 하나님은 반드시 존재하신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은 어머니 하나님을 부인한다. 그들의 주장 중 하나가 성경에 '그리스도의 아내'가 교회나 성도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를 반박하는 내용을 지난 포스트에서 다뤘다.

 

 

성령과 신부에서 신부가 교회인가, 아니면 어머니 하나님인가

성령과 신부께서 값없이 생명수를 주시니 원하는 자는 성령과 신부께 나아오라는 말씀을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 말씀이다. 생명수를 값없이 주신다고 했으니 구원을 바라

flyinggoodman.tistory.com

여기에 덧붙여 '그리스도의 아내' 외에도 어머니 하나님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담의 아내 '하와'다.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하는 아담과 '하와'의 등장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구절을 일단 하나 살펴보자. 하나님께서 육일창조 역사 가운데 사람을 창조하시는 여섯째날의 일이다.

창세기 1장 26~27절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아담과 하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1:26)" 그렇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이 남자와 여자, 곧 아담과 하와였다.

남자인 아담은 남성적인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요, 여자인 하와는 여성적인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다. 즉 하나님은 남성적인 형상의 하나님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여성적인 형상의 하나님이신 어머니 하나님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은 아담을 가리켜 오실 자의 표상(롬5:14)이라 하여 오실 자이자 그리스도이신 재림 예수님, 즉 아버지 하나님을 표상한다. 그렇다면 그 아내 하와는 누구를 표상할까? 당연히 어머니 하나님을 표상한다. 그런데 하와 역시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 하나님을 표상하는 '하와'도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머니 하나님을 표상하는 하와도 '그리스도의 아내'처럼 1차적으로는 성도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2차적으로는 6천 년 끝에 생명수 주시는 구원자 어머니 하나님으로 등장하실 신부를 의미한다.

지상의 에덴동산에서 하와는 뱀의 미혹에 꾀임을 받아 선악과를 먹는 죄를 짓게 된다. 이 사건은 모형과 그림자이다. 우리 영혼이 마귀의 미혹에 넘어가 천국에서 죄를 짓고 이 땅까지 쫓겨내려오게 된 것이다. 따라서 하와는 우리의 모습인 성도를 표상하기도 한다.

아담과 하와는 육일창조의 마지막 날 즉, 안식 직전에 창조되어 모든 짐승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는다. 이 또한 모형과 그림자라면, 그 실체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기 직전에 등장하셔서 모든 짐승으로 표상된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성령과 신부를 표상한다. 성령과 신부는 마지막 때 생명수를 값없이 주시며, 우리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신다. 이 성령과 신부가 바로 아담과 하와로 표상된 것이다. 

그래서 하와는 성도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늘 어머니, 즉 어머니 하나님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하실 분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

어머니 하나님은 육천년 구속사업의 마지막 때에 등장하신다. 요한계시록에는 어린 양의 아내를 하늘 예루살렘이라고 알려주고 있다(계19:7, 계21:9~10). 어린 양은 예수님을 의미하기에 어린 양의 아내나 하늘 예루살렘은 어머니 하나님을 알려주신 내용이다(갈4:26). 

그렇다면 마지막 때 등장하시는 어머니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외모나 학력, 인품이나 지혜, 용모의 기준 등을 내세워서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성경을 통해서만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사야 62장 7절 하늘 아버지께서 세워주시는 하늘 어머니

여호와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어머니 하나님은 누구의 추천이나 기준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예언대로 오직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세워주셔야만 한다.

어머니 하나님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증거해주신다는 뜻은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창세기 2장 23절 아담이 하와를 증거. 내 뼈 중의 뼈, 내 살 중의 살

아담이 하와를 가리켜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증거하고 있다. 앞서 아담은 아버지 하나님을 표상하고 하와는 어머니 하나님을 표상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아담으로 표상된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와로 표상된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해주실 것에 대한 예언이다. 

한가지 더, 어머니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를 '하와'라는 이름을 통해서 확인해보자.

창세기 3장 20절 하와는 생명이라는 뜻으로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라

아담이 하와의 이름을 알려주고 있다. 이 역시 아버지 하나님께서 어머니 하나님을 알려주실 예언이다. 하와라는 이름의 뜻은 난하주를 통해 보면 '생명'이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분이 바로 어머니 하나님임을 알 수 있는 말씀이다. 

이처럼 성경에서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도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에 대해 증거를 해주신다. 어머니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는 생명수의 축복에 나아갈 수 없다. 영생 얻고 천국 가는 것 역시 우리는 어머니 하나님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성경에서 알려주는 여러 비유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마태복음 24장에 등장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우리로 하여금 재림그리스도의 등장 시기를 가늠하게 해준다. 성경이 재림 예수님의 등장 시기를 연도법으로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지는 않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해당 연도에 얼마나 많은 거짓그리스도들이 등장하겠는가? 다만 등장 시기에 대해 결정적인 징조를 예언하여, 성경을 깨닫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재림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게 해주신 것이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신 초림 예수님

예수님 초림 당시 제자들이 예수님께 재림과 세상 끝날에 나타날 징조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다(마24:3). 그 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재림 시기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24장 32절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예수님의 답변이 이러하니,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르는 재림의 시기를 궁금해 한다면 반드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럼 먼저 무화과나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무화과나무는 구약에서부터 등장한다. 성경에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비롯한 여러 선지자들은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고 알려주었다(렘24:5). 

그러므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화과나무로 비유된 이스라엘 나라에 대해 살펴보아 재림의 시기에 대한 징조를 깨달아보라는 뜻이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로 알려 주신 예수님의 교훈

무화과나무의 비유로 교훈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있다. 그 가운데 무화과나무 실물을 통해 교훈하신 장면을 성경을 통해 살펴보자

마가복음 11장 12~14절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30년을 육신의 몸으로 사셨다. 무엇보다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을 때가 아니란 걸 모르실 리 없다. 당연히 열매가 없을 것을 아시면서도 열매를 구하셨고,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여 앞으로도 열매를 맺지 못할 거라고 하셨다.

우리도 30년을 넘게 살아온 이라면, 우리나라에 흔한 나무 열매가 언제 여는 지는 알고 있다. 마치 봄에 감, 사과, 배를 따러 가는 것과 뭐가 다른가. 예수님께서 그것을 모르고 구하시고, 또 열매가 없다고 저주하실 분이겠는가? 다만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당신의 뜻을 알리고자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이용한 것이다.

당시 하나님을 기본적으로 믿고 성경을 보는 이스라엘 민족이라면, 성경에서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다는 것은 당시 복음을 전하러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영접하는 이가 없는 이스라엘을 표상한다.

예수님께서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예수님을 배척한 이스라엘이 결국 저주받아 말라죽은 무화과나무처럼 멸망당하게 될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한 예수님의 또 다른 교훈의 말씀도 있다. 이 교훈 역시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신 말씀이다.

누가복음 13장 6~7절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

예수님께서는 30세에 침례를 받으신 후에 십자가에 운명하시기까지 3년 동안 복음을 전파하셨다. 위 성경구절에서 3년동안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한 이가 바로 예수님이다. 하지만 실과를 얻지 못했다고 하셨으니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배척한 것을 비유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 하신 것 역시 예수님을 배척한 이스라엘이 장차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을 경고하신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씀(눅13:8~9)에는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거름을 주리니 그래도 열매가 열지 않으면 그때 찍어버리소서라고 과원지기가 간청한다. 이 간청대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바로 멸망시키지 않고, 조금 더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 이후 40년이라는 시간의 기회를 얻었지만, 여전히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스라엘은 결국 주후 70년에 멸망한다.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아닌 직접적인 이스라엘 멸망 예언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아닌 직접적인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도 있다. 

누가복음 21장 20~24절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직접적인 예수님의 예언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멸망이 가까운 줄 알라고 경고하셨다. 이스라엘은 주후 70년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대에게 멸망했다. 멸망 3년 전에 예루살렘은 로마 베스파시아누스 장군 군대에 의해 에워싸인 적이 있었다. 그나마 예수님의 예언을 믿었던 이들은 군대가 로마로 회군한 후에 펠라성으로 이주하여 멸망의 화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스라엘 민족은 티투스 장군의 로마군대에 의해 참혹하게 멸망당했다. 칼날에 죽임을 당하고, 이방에 사로잡혀 갈 것이라는 예언대로 예루살렘 멸망 당시 약 110만명이 죽고, 9만 7천명이 포로가 되었다. 결국 무화과나무의 비유대로 이스라엘은 마르고 찍혀 죽은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멸망의 상태로 있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에게 밟힐 것이다고 했기 때문에, 그 때가 차게 되면 다시 회복될 것이다. 이방인의 때가 아무리 길어도 정한 기간이 다 차면 다시 회복된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멸망 이후 약 1,900년동안 나라없는 유랑 민족이 되어 전 세계를 떠돌며 살았다. 그동안 이스라엘 땅은 이방인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옛 조상의 땅으로 다시 돌아와 나라를 세웠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8년에 이스라엘은 기적적으로 독립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알려주는 재림그리스도의 등장 시기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신 예수님. 2천년 전에 예수님의 저주로 말미암아 죽은 무화과나무가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다시 소생함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1,900년 동안 죽어있던 무화과나무를 소생시키신 이유가 무엇일까? 예수님께서는 무화나나무를 통해서 당신의 재림 시기를 알려주시고자 함이었다.

겨울에 나무는 잎이 지고 가지만 덩그러니 남아있어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 봄이 되고, 여름이 되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다. 무화과나무로 표상된 이스라엘이 마치 이와 같다. 이방인의 때가 다 차기까지 나라없이 유랑민족이 되었던 이스라엘은 정하신 때가 되자 다시 독립을 하게 되었다. 마태복음 24장 32절 말씀에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하시면서 다시 소생하는 그 때에 인자가 곧 가까이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하셨다. 즉 이스라엘이 독립한 1948년이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시는 시기이다.

인류 역사상 나라가 없어진 지 1,900여년 만에 다시 나라를 되찾은 예는 이스라엘 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기적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특별해서 이루어진 독립이 아니라 성경 예언대로 이루어졌을 뿐이다. 이 전에도 이스라엘은 애굽이나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했지만, 모두 성경의 예언대로 해방받은 역사가 있다. 이스라엘을 1,900년만에 기적과도 같이 독립시키신 이유는 성경의 예언, 예수님의 재림 시기를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인자가 문 앞에 이르렀다는 말을 무슨 의미일까?

요한계시록 3장 20절 재림 예수님께서 전도하시다

이 장면은 재림 예수님께서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려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는 장면이다. 즉 예수님께서 다시 한 번 육체로 이 땅에 재림하셔서 동네를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신다. 그러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는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하나님을 영접하라는 것이다. 이 예언대로 재림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독립한 해인 1948년부터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셔야 한다. 

이 예언따라 오신 분이 안상홍 하나님이시다. 1948년에 침례를 받으시고 그 때부터 복음 사역을 시작하셨다. 초림 당시 예수님께서 30세에 침례를 받으시고 복음을 전파하신 것처럼, 안상홍님께서도 30세 되던 해인 1948년에 침례를 받으시고 복음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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