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신부께서 값없이 생명수를 주시니 원하는 자는 성령과 신부께 나아오라는 말씀을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 말씀이다. 생명수를 값없이 주신다고 했으니 구원을 바라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성령과 신부에게로 나아가는 것이 마땅하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지막 성령시대에 생명수를 주시는 성령과 신부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성령은 성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신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것은 다들 잘 알 것이다. 하지만 신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모르는 이들이 많다.

요한계시록 22장 17장 성령과 신부

 

성령과 신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들은 신부를 누구라 하는가

성령과 신부 중에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신부는 어머니 하나님임을 부인하는 자들이 많다. 부인하는 자들은 대개가 교회가 그리스도의 아내로 비유된 말씀들만 내세우면서 신부도 교회나 성도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성경 구절은 에베소서 5장과 고린도후서 11장 말씀이다. 남편이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하라는 말씀이다. 우리와 같은 성도를 아내로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비유한 말씀이다.

성경에는 한 단어가 꼭 한 가지 의미로만 쓰이지 않고, 두 가지 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앞 뒤 문맥을 배제하고 무조건 한 단어는 한 가지 뜻만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면,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여 오히려 하나님 말씀을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어머니 하나님을 부정하는 자들 역시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성령과 신부에서 신부 역시 저 두 구절을 가지고 무조건 어린양의 아내, 즉 신부는 교회나 성도라고 단정하고 있다. 

 

성령과 신부에서 '신부'처럼 한 단어가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 예 : '어린 양'

성령과 신부에서 신부는 어린 양의 아내, 즉 그리스도의 아내를 의미한다. 그리고 앞선 에베소서 5장이나 고린도후서 11장에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아내로 비유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한계시록의 신부인 어린 양의 아내도 무조건 교회나 성도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 예가 바로 '어린양'이라는 단어다. 성경에서 어린양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면,

요한복음 21장 15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당신을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베드로의 대답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신다. 여기에서 어린양은 분명 그리스도가 아닌 일반 성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음 구절에서도 어린양이 성도라고 할 수 있을까?

요한복음 1장 29절 예수님을 가리켜 어린양

요한복음 1장 29절의 어린양은 침례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한 말씀이다. 즉 어린양은 예수님이다. 그런데 다른 구절에서 어린양이 일반성도를 의미한다고 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또한 일반 성도를 가리키는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비록 다른 구절에서는 어린양이 일반 성도를 가리키는 것일지라도 요한복음 1장 29절의 어린양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이처럼 같은 '어린양'으로 표현되었더라도, 앞 뒤 문맥에 따라 그 의미는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령과 신부에서 그리스도의 아내, 어린양의 아내로 표현된 신부 역시 마찬가지다.

 

성령과 신부에 대한 올바른 해석

성령과 신부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무엇인가? 성령은 이견이 없지만, 신부(어린양의 아내, 그리스도의 아내)는 문맥에 따라 그 의미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앞선 두 구절(엡5:25, 고후11:2)에서는 그리스도의 아내가 교회나 성도를 의미하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다. 하지만 요한계시록 19장이나 22장의 어린양의 아내나 신부의 경우는 그 의미가 다르다.

어린양의 혼인잔치_성령과 신부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서 교회나 성도는 청함을 입은 자들이다. 그리고 생명수를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죄인인 성도가 어찌 죄인에게 생명수를 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생명수 주시는 어린양의 아내, 즉 신부는 오직 어머니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아내가 성도를 의미한다는 구절만을 내세워서, 마지막 때 생명수 주시는 신부, 즉 어머니 하나님을 부인해서는 안된다. 이는 성경적이지 못한 주장이다.

 

 

어머니 하나님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이름, 아담과 '하와'.

어머니 하나님은 반드시 존재하신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은 어머니 하나님을 부인한다. 그들의 주장 중 하나가 성경에 '그리스도의 아내'가 교회나 성도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를 반박하는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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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앞만 보거나 고개를 숙이고 다니면서 땅을 바라보고 걸을 때가 많다.

요즘은 가을 하늘이 얼마나 예쁜지 미처 모르고 지나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이젠...

그래 가끔은 하늘을 보자.

파란 하늘과 멋진 구름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 하늘 사진, 구름 사진을 자주 올릴 것 같다.

하늘, 구름. 석양 쯤.

석양 때 쯤일까. 노르불그스름하게 물든 하늘과 구름이 멋져서 한 컷!

시골에서 바라 본 추석 보름달

물론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 들이라서 화질은 좋지 않다. 또한 사진 전문가도 아니어서 구도나 초점도 제대로가 아니다.

그래도 찍을 당시의 설렘과 감탄만큼은 사진을 보면 생생히 기억난다.

아파트 건물 사이로 보이는 구름 한 점

손오공이 저런 구름을 타고 다녔으려나...ㅎㅎ

하늘이 좋다. 구름이 좋다. 사진이 좋다.

앞으로도 자주 기록하리라.

안상홍님께서는 성경으로 하나님의 여러 진리를 가르쳐주시고, 증거하셨다. 그 가운데 이번 포스트에서는 재림과 최후 심판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 살피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은 재림과 최후 심판을 같은 시기로 인식하고 있다. 예수님 즉 하나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실 때에는 그 날이 바로 세상이 멸망하고 최후의 심판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은 어떻게 알려주고 있을까?

 

성경은 안상홍님의 재림을 부정하는 자들의 모순된 생각을 알려준다

성경과 안상홍님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왜냐하면 성경은 재림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이고, 안상홍님께서 바로 재림 그리스도로 오셨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이 세상은 멸망당하고 구원받을 성도들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최후 심판의 날이라고 생각한다.

누가복음 18장 8절_재림하실 때 믿음을 볼 수 있겠는가? 믿음없는 세상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다시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볼 수 있겠느냐라고 물었다. 그것은 볼 수 없다는 말씀이시다.  재림하실 때 바로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진다면, 믿음을 볼 수 없다 하셨으니 구원받을 성도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구원의 결말은 아닐 것이다. 성경에도 마지막 때 구원받을 성도들이 있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고전15:51~). 그래야 지금의 우리도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는 의미가 있게 된다.

따라서 성경대로 안상홍님께서 믿음 없는 세상에 재림하셔서 최후의 심판 전에 다시 한번 믿음을 세워주셔야 한다. 그래야 구원받을 성도가 존재하게 되고, 성경의 예언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재림이 곧 최후의 심판이라는 저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 증거된 안상홍님 재림과 달리 최후의 심판 때의 모습과 하실 일

성경에는 안상홍님의 재림에 대한 내용도 있지만, 최후 심판 때의 모습과 하실 일에 대해서도 언급하신 기록이 많다. 안상홍님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 때의 모습과 하실 일이 어떻게 다른지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최후의 심판 때의 모습과 하실 일을 확인해보자면,

이사야 66장 15~16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셔서 심판하심

최후 심판 때와 재림 때의 하나님의 모습은 서로 다르다. 먼저 최후 심판 때의 하나님의 모습은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강림하시면서 하시는 일은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시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최후 심판의 모습이다. 신약성경에도 비슷한 모습과 하시는 일이 기록되어 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7절 불꽃 중에 강림하셔서 형벌 주심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타나시는 모습 또한 불의 모습이다. 오셔서 하시는 일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복음에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영원한 멸망과 형벌을 주시는 일이다. 이 역시 최후 심판 때의 모습이다. 분명 최후 심판 때의 모습은 일관되게 불꽃 중에 임하신다. 하시는 일 역시 심판이다.

 

성경에 증거된 안상홍님 재림 때의 모습과 하시는 일

성경 속 안상홍님 재림의 모습과 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 최후 심판 때의 모습과 하시는 일과는 다른 모습인지 확인해보자. 분명 구별되는 모습이어야 우리가 확실히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30절 인자가 구름타고 택하신 자를 모으심.

이 말씀은 제자들이 앞에 계시는 예수님께 재림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 답을 주시는 내용 가운데 한 말씀이다. 인자가 구름타고 오신다고 했다. 여기서 인자는 예수님이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예수님의 임하심을 물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당신이 구름타고 올 것을 너희가 볼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다시 임하실 것에 대한 내용이다. 구름은 육체를 의미하며, 이천년전과 같이 다시 오실 때에도 육체로 임하실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나타나실 때의 모습이 최후 심판 때 불꽃 중에 오신다는 말씀과는 달리 여기서는 구름타고 오신다고 했다. 하시는 일도 다르다. 여기서는 택하신 자들을 사방에서 모으시는 일을 하신다고 이어지는 31절 말씀에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재림 때와 최후 심판 때는 오시는 모습과 하시는 일이 확실히 다르다. 재림 때는 구름을 타고 오셔서 택하신 백성들을 사방에서 모으시는 일을 하신다. 반면 최후의 심판 때는 불꽃 중에 오셔서, 악한 자들에게 심판과 형벌을 내리신다. 그렇다면 재림과 최후의 심판의 시기는 어떨까?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심판 전에 재림을 통해 믿음 없는 세상에서 택하신 자들을 모으시는 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누가복음 21장 27절 인자가 구름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구름 타고 재림하시는 일을 보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어 구속이 가까워옴을 알라고 했다. 곧 구원을 준비하라는 뜻이다. 이것은 아직 최후의 심판이 오기 전임을 암시한다. 따라서 성경에서처럼 안상홍님께서 재림하시고 난 후 택하신 백성을 모으시는 동안 우리들은 구원을 준비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믿음과 행함을 통해 새 언약의 규례를 소중히 지키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을 하며, 최후의 심판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성경의 말일에 안상홍님께서 재림하셔서 시온으로 택하신 백성을 모으신다

성경의 예언대로 안상홍님께서 재림하셔서 택하신 백성을 모으신다면, 어디로 모으시는지도 알아야 한다. 성경에서는 재림 예수님 안상홍님께서 절기 지키는 시온(사33:20)으로 모으신다고 알려주고 있다. 

미가 4장 1절 말일에 시온으로 민족들이 몰려갈 것이라

성경에서 말일은 마지막 때를 의미한다. 즉 미가서 4장 1절의 말씀은 최후의 심판을 앞둔 우리 들에게 주신 예언이다. 최후 심판 전에 안상홍님께서 재림하셔서 택하신 백성을 모으신다고 했다. 성경 예언대로라면 마지막 시대에는 구원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이 있을 것이다 . 바로 시온이다. 

서두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 말씀은 2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새 언약의 진리를 세워주셨지만, 다시 재림하실 때에는 그 새 언약의 진리를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 말씀과 성경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새 언약 진리는 초대교회 이후부터 조금씩 변개되었고, 종교암흑세기를 걸쳐 모두 훼파되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단7:25).

따라서 마지막 때 다시금 성경의 예언따라 안상홍님께서 재림 예수님으로 오셔서 훼파되었던 새 언약의 진리를 다시 세워주셨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는 시온으로 많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배우러 몰려올 것이라 예언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최후의 심판의 때가 임하기 전에 절기 지키는 시온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성경과 안상홍님께서는 재림과 최후의 심판의 때가 같지 않음을 밝히 알려주고 있다. 반드시 최후의 심판 전에 우리를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신 재림 예수님 안상홍님을 올바로 깨닫고 성경의 가르침도 올바로 깨닫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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