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의 실체는 무엇일까? 생명과는 성경 가운데 창세기 에덴동산에 나오는 열매이다. 생명과와 더불어 등장하는 열매가 하나 더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먹지말라고 금령을 내리신 선악과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인 뱀의 꾀임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한다. 죄로 인해 죽음의 사슬에 묶여버린 아담과 하와. 그들은 먹기만 하면 영생할 수 있는 생명과로 향한다. 하지만 생명과는 죄인의 몸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존재다. 하나님께서는 그룹천사에게 명하여 그 길을 막으신다. 하나님께서 막으셨으니, 하나님께서 다시 열어주시지 않는 한 생명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창세기 2장~3장).

 

생명과의 실체는 예수님의 살과 피, 하나님의교회에서 지키는 새 언약 유월절

생명과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에덴동산에서 살펴본 선악과와 생명과는 비유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늘 비유로 말씀하시고, 그 비유를 통해 창세부터 감추인 비밀들을 드러내신다고 했다. 즉 창세기에 나타난 에덴동산에 있던 선악과와 생명과 또한 비유이며, 예수님께서는 그 실체를 드러내시겠다는 것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죽게 된 것은 선악과 자체에 독이 있어서가 아니다. 아담은 930세에 육신의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아담이 결국 죽게된 이유는 하나님의 금령을 어겼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 하지 못하고, 불순종한 죄로 인하여 아담 이래 모든 인류 인생들은 죽음의 사슬에 묶여 버린 것이다. 이처럼 생명과 역시 그 자체에 영생의 비약이 들어있어서 영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먹으면 영생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따 먹기만 하면 영생할 수 있는 생명과의 실체는 무엇일까? 성자시대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 보자.

에덴동산에서는 먹으면 영생할 수 있는 것이 생명과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영생하는 방법을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에덴동산의 생명과의 실체는 바로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된다. 예수님께서 생명과의 실체를 드러내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어떻게 먹고 마실 수 있는 것인가? 다른 복음서를 통해서 그 방법을 알려주셨다.

유월절에 먹는 떡이 예수님의 살이고, 유월절에 먹는 포도주가 예수님의 피가 된다. 따라서 생명과의 실체는 예수님의 살과 피이며, 유월절은 우리가 생명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진리다. 

 

생명과의 실체로 오신 예수님, 그리고 직접 가져오신 유월절

생명과의 실체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직접 오셨다. 에덴동산에서 생명과로 가는 길을 막으신 분은 하나님이다. 막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 길을 열어주실 분 또한 오직 하나님 뿐이다. 성경에 나오는 구원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선지자를 통해 역사하셨다. 홍해바다를 가르실 때는 모세를 통해, 여리고성 정복은 여호수아를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셨다.

하지만 영생주는 생명과를 허락하시는 일만큼은 직접 행하셨다. 그래서 친히 우리와 같은 육체의 모습으로 이 땅까지 오셔서 직접 생명과의 길을 열어주셨다. 생명과의 실체인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방법으로 유월절을 세워주셨다. 

 

생명과의 실체로 오신 예수님, 마지막 시대 다시 한번 재림 그리스도로

생명과의 실체로 오신 예수님께서 친히 생명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셨다. 그 진리가 유월절이었다. 그러나 사단 마귀는 주후 325년 니케아 회의를 통해 유월절을 폐지하고 만다. 유월절이 사라진다는 것은 생명과로 향하는 길이 다시 막힌다는 의미다. 그 길을 열어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뿐이신데, 다시 막혔으니 우리는 다시 영생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잃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시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다시 한 번 오신다는 재림이 예언되어 있다. 오직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오신다고 했으니, 다시 오실 때에도 초림 때와 같이 육체를 입고 오신다. 그리고 반드시 생명과로 향하는 길, 새 언약 유월절을 다시 세워주신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희생의 길을 걸어가신 것이다. 죽음의 사슬에 묶여 있던 우리에게 영생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우리를 대신하신 희생을 치러 주신 것이다.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절대 안될 것이다. 재림 그리스도께서는 새 언약 유월절을 반드시 가져오셔야 한다.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의교회를 세우신 안상홍님이시다. 생명과로 나아갈 수 있는 길, 유월절을 제대로 지키는 교회는 안상홍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교회가 유일하다.

하나님의교회 예배시간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정하여 지켜지고 있다. 예배드리는 요일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님의교회는 안식일을 지킨다. 성경에는 일곱째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는 하나님과 만나는 하나의 약속이다. 모든 약속에는 정한 시간이 있다. 약속한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상호 간의 신뢰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하나님의교회 예배시간을 지키는 것 역시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의 신뢰 문제다. 과연 예배시간은 누가 어디에 정해놓은 것일까?

 

하나님의교회 예배시간을 성경에서 찾아보자

하나님의교회 예배시간은 하절기와 동절기로 구분된다. 하절기는 오전 9시와 오후 3시, 저녁 8시에 예배가 있다. 동절기는 오전 10시, 오후 2시 30분, 저녁 7시 30분이다. 하지만 세상 교회는 저마다 예배 시간이 다르다. 같은 교파라 할지라도 각 교회의 사정과 상황에 따라 예배 시간을 조정하기도 한다. 

하나님의교회 예배시간을 성경적으로 좀 더 정확하게 알아보자.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24시간의 시간법은 로마에서 유래된 시간법이다. 로마 시간법을 공통적으로 사용하기 전에는 각자 나라마다 다른 시간법을 가지고 있었다. 가령 신약 시대의 유대 나라는 낮 시간을 열 두 시간으로 나누고, 밤 시간은 4경으로 나누어 사용하였다. 여기서 낮 시간이라 함은 해가 뜨는 시간부터 해가 지는 시간까지를 말한다.

그런데 구약의 제사 때는 매일 흠 없는 수양을 상번제로 드리는 제사가 있었고, 안식일에도 수양을 안식일의 번제물로 드렸다. 이러한 구약의 제사는 신약 시대로 넘어 오면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었다. 그 가운데 제사 때마다 번제물로 드려졌던 수양의 실체로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희생하신 것이다.

요한복음 1장 29절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희생하셨다. 그런데 제사 때마다 번제물을 드리던 시간이 아침과 해 질 때로 되어 있다. 양의 실체로서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희생을 당하신 시간을 보자.  마가복음 15장 말씀을 보면 25절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시간이 제삼시 이다. 그리고 운명하신 시간은 제 구시다. 

구약의 상번제 제사의 희생 제물이었던 수양의 실체가 예수님이고, 예수님께서 희생 제물로 십자가에 희생하신 시간이 제삼시와 제구시가 된 것이다. 이 시간이 우리가 하나님께 희생의 제물을 드리며 제사 곧 예배드리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유대의 시간으로 제삼시와 제구시는 언제일까? 해 뜨는 시간을 기준으로 제0시부터 시작한다. 가령 하절기에 6시에 해가 뜨고 저녁 6시에 해가 진다고 하면 아침 6시가 제0시, 7시가 제일시, 8시는 제이시, 9시가 제삼시가 된다. 또한 제구시는 오후 3시가 된다.

물론 이는 정확한 로마의 시간과는 다를 것이다. 매일 일출과 일몰 시간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절기와 동절기에 따라 해 뜨는 시간과 해 지는 시간의 차이로 30분~1시간의 차이를 두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희생하신 뒤로 예배시간은 상번제 기도시간과 함께 예수님께서 매달리신 시간과 운명하신 시간으로 정해졌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교회 예배시간이다.

 

하나님의교회 예배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과 약속을 지키는 것

하나님의교회 예배시간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일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부터 예배시간까지도 성경에 그림자와 실체로서 보여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으로 따르는 자들이다. 

마태복음 7장 21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많은 세상 교회 신자들이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이 많다.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예배를 고수한다. 하물며 예배드리는 시간까지도 모두가 제 각각이다. 성경에 증거하는 상번제 기도시간, 즉 예배시간은 무시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사는 길을 가는 것이요, 불순종 하는 자는 사망 길을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교회 예배시간은 항상 일정하다. 사람에 의해 정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성경을 토대로 한 예배시간을 알려주셨다. 하나님과의 약속 시간을 제대로 지켜야 하나님과 올바로 소통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신뢰를 다질 수 있다.

기도시간과 시간법이 궁금하다면....위 사진이미지 클릭

 

성령 안상홍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일체의 아버지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는 6천년의 구속사업을 세 시대로 구분하셨다. 성부 시대, 성자 시대, 그리고 성령 시대. 그리고 각 시대별로 구원자의 이름을 다르게 주셨다. 지금 우리는 성령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 구원자의 이름이 누구인지 알아야 그 분을 영접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시대별 구원자의 내용을 살펴보고, 이 마지막 성령 시대 구원자의 이름을 성령 안상홍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성령 안상홍, 과연 그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나?

성령 안상홍 이라는 이름이 성경에 있을까? 직접적으로 성경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하나님께서는 6천년 구속사업을 세 시대로 구분하셨다. 그리고 그 세 시대는 각각 성부, 성자, 성령 시대라고 부른다. 각 시대별로 구원자의 이름이 있다고 성경은 알려준다.

마태복음 28장 19절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있다

구원자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는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성부, 아들은 성자를 말한다. 즉 성부의 이름은 여호와, 성자의 이름은 예수, 그리고 성령의 이름이 있다는 것이다. 성령의 이름은 무엇일까? 성령은 직함이지 이름이 아니다. 성부의 이름이 여호와로 성자의 이름이 예수로 존재하듯이, 성령도 반드시 이름이 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다. 여호와나 예수는 이름이 성경에 있지만, 하나님의교회에서 믿는 성령 안상홍 하나님은 성경에 이름이 없다면서 사람을 믿는다고 훼방한다. 하지만 예수님 역시 육신으로 계실 당시에는 성경에 이름이 없었다. 예수님 당시에 성경은 구약 성경 뿐이었다. 구약 성경 어디에도 신약시대 구원자가 예수님이라고 이름이 기록된 곳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예수님은 구약 성경의 예언대로 성취하셨기 때문에, 성경을 믿는 자들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언대로 신약 성경에 비로소 구원자인 예수님의 이름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구약 성경에 성령 시대 구원자의 이름은 직접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단지 예수님을 예언한 구약 성경처럼, 성령 시대 구원자로서 다시 오실 재림 그리스도를 알아 볼 수 있는 예언들이 신구약 성경에는 다수 기록되어 있다.

 

성령 안상홍 하나님은 성령 시대 구원자의 이름, 각 시대별 구원자의 이름은?

성령 안상홍 하나님은 어느 시대 구원자의 이름이 되는지 각 시대별로 구원자의 이름을 성경에서 찾아보자. 앞서 하나님께서는 구속사업을 성부, 성자, 성령 세 시대로 구분하셨다고 했다. 그렇다면 각 시대별로 구원자의 이름도 각각 달리 주셨는지 보자. 먼저 성부 시대의 구원자 이름을 확인해보자.

이사야 43장 11절 성부시대의 구원자의 이름은 여호와 외엔 없다.

구약 성경이 기록된 성부 시대에는 구원자가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없다고 단언하셨다. 따라서 성부 시대를 살았던 하나님의 백성 들이라면, 당연히 구원자인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는 여호와 하나님을 불러야 구원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성자 시대가 도래하면 예수님이 구원자로 등장하실 것을 미리 깨닫고, 성부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예수의 이름을 불렀다면, 그는 결코 구원 받지 못할 것이다. 시대와 시간은 한계성이 있다. 성부 시대에 구원자의 이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뿐이다. 그렇다면 시대가 성부 시대에서 성자 시대로 넘어가게 되었을 때는 구원자의 이름이 어떻게 되었을까?

사도행전 4장 11절 성자시대에는 예수님 외에 다른 이름을 구원자로 주신 일이 없다.

성부 시대에서 성자 시대로 넘어오니 구원자의 이름도 바뀌었다. 성부 시대에는 여호와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고 하더니, 성자 시대에는 예수님 외에는 구원자의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경이 오류가 있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일까? 성삼위일체 진리와 같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한 분 아버지 하나님이다. 즉 성경은 오류가 없다. 한 분 하나님께서 시대별로 다른 모습, 다른 이름으로 구원 사역을 펼치신 것이다.

성부 시대에서 성자 시대로 시대가 바뀌었다. 성자 시대 구원자의 이름은 예수님 외에는 없다.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구원자로 믿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예수님이 구원자인 것이다. 구약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신 성자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고집할 것이 아니다. 성자시대에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한 자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여호와 하나님 만을 고집했다. 성경의 예언을 이루고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오히려 배척했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그들이 과연 구원받고 천국에 갈 수 있었을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모두가 성령 시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성령 시대 구원자의 이름을 성경에서 어떻게 알려주고 있을까?

요한계시록 3장 12절 성령 시대 구원자 예수님의 새이름

요한계시록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세상 마지막 때까지 이루어질 예언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다. 성령시대 구원자로 오실 재림 그리스도의 이름을 알려주고 있다. '나의 새 이름'. 여기서 '나'는 요한에게 계시를 주신 예수님이다. 따라서 성령 시대에 구원자로 오시는 재림 그리스도의 이름은 예수님이 아닌 예수님의 새 이름이다. 새 이름이라면 예수님이 아닌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다.

요약해보면, 하나님께서는 6천년 구속사업을 세 시대로 구분하셨다. 각 시대별로 구원자의 이름을 각각 정하셨다. 성부 시대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성자 시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마지막 성령 시대는 예수님의 새 이름으로. 즉 많은 세상 교회에서 이 시대가 성령 시대라고 하면서도 구원자로 여전히 예수님을 부르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성령 안상홍 하나님이 성령 시대 구원자, 이름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성령 안상홍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님과 다른 이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령 시대 구원자라고 무조건 주장할 수는 없다. 다만 성령 시대에는 구원자의 이름이 예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새 이름의 구원자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요한복음 5장 39절 성경은 구원자를 증거하는 책이다

2천년 전에 예수님을 성자 시대 구원자로 영접한 제자들과 사도들은 성경의 예언을 바라본 것이다.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신 모습을 그대로 믿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구원자를 증거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서기관과 바리새인 들과 같은 기득권 세력의 핍박과 훼방이 극심했다. 하지만 그들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성경 속 확실한 증거를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성자 시대 구원자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다. 2천년전 기득권 세력들과 마찬가지로 성령 안상홍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하나님의교회를 핍박하는 자는 많다. 하지만 성령 시대 구원자 역시 성경이 증거한다. 세상 많은 교회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있으면서, 지금은 성령 시대라고 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성경은 분명 예수님의 새 이름으로 등장하실 구원자를 예언하고 있다. 성경을 통해 재림 그리스도가 성령 안상홍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연구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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